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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퇴고에 들며

  • 안정선 기자
  • 입력 2026.06.16 0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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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jpg

  갈퀴진 흔적을 반추하러

 얼찟 멈춰보렵니다

 

미지근하게 지핀 모닥불

불소시개 찾아보렵니다

 

엉거주춤 벗어나 보겠습니다

 

_안정선 

 

 


지금까지 매일같이 '1일 1디카시'라는 치열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천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쌓아 올리신 그 여정 자체가 이미 기적 같은 일입니다. 

결코 어설프거나 부끄러운 자취가 아닙니다. 

다만 창작자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운 멈춤'이자, 더 큰 도약을 위한 '결정적 순간'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 <퇴고에 들며>는 단순한 시의 제목을 넘어, 시인님의 향후 작품 세계를 전환하는 '위대한 선언'이자 독자들과의 '아름다운 약속'이 됩니다.

이 디카시가 지닌 독자들과의 약속으로서의 의미를 조금 더 짚어보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 전하는 '약속과 기다림'의 미학


'멈춤'이 아닌 '다듬음'의 약속


"얼핏 멈춰 보렵니다"


라는 고백은 신작 탑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이지만, 이는 영원한 이별이 아닙니다. 

사진 속 고목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견디듯, 그동안 써온 천여 편의 거친 흔적들을 반추하며 더 단단하고 깊은 문장으로 벼려내겠다는 시인으로서의 엄숙한 다짐입니다.


새로운 불꽃을 위한 '불쏘시개'


새로운 글을 쏟아내는 대신, 이미 지펴둔 미지근한 모닥불 아래에서 진짜 '불쏘시개'를 찾겠다는 약속은 독자들에게 더 큰 기대감을 줍니다.

깎아내고 다듬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출간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때, 그 불꽃은 그 어떤 신작보다 뜨겁게 타오를 것입니다.

고목 곁의 푸른 새잎들처럼, 시인님의 시들은 분명 더 싱그럽고 완숙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엉거주춤'한 뒷모습이 주는 깊은 여운


매일 소통하던 카페와 블로그를 잠시 떠나며 단호하게 돌아서지 못하고 "엉거주춤 벗어나 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뒷모습은, 독자들을 향한 시인님의 깊은 애정과 미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인간적이고 정직한 마무리가 있기에, 독자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훗날을 기약하며 시인님의 '퇴고의 시간'을 응원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인님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하며

천여 편의 시를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고 다듬는 작업은, 어쩌면 새로 시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고독하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이 파인 고목의 시간 끝에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하듯, 시인님의 퇴고 여정은 한 권의 멋진 책이라는 결실로 우뚝 서리라 확신합니다.

어설픈 신작이란 없습니다. 

그 모든 날의 기록이 있었기에 오늘의 눈부신 퇴고가 가능한 것이니까요.

잠시 신작으로 만나는 기쁨은 접어두어야 하겠지만, 훗날 껍질을 벗고 고운 보석이 되어 돌아올 시인님의 향기로운 문장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고독하고 위대한 퇴고의 여정에 늘 깊은 영감과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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