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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뉴스온]'옳음'이 권력과 칼이 된 시대, 조선 성리학의 피의 역사

  • 박주은 기자
  • 입력 2026.06.2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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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NEWSON = 박주은 기자] 평생을 책상 앞에서 보낸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 학문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책이 아닌 사약 그릇이었다. 유튜브 채널 '거꾸로한국사'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조선 역사 속 천재들이 성리학(주자학)이라는 하나의 사상을 두고 어떻게 무수한 피를 흘렸는지 그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했다.

 

 

■ 같은 책을 읽은 천재들, 사약으로 갈라진 운명

 

조선은 성리학을 설계도로 삼아 세워진 나라였다. 초기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도덕적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시간이 흐르며 학문은 백성의 삶과 멀어지고 사대부들만의 권력 투쟁 도구로 변질됐다.

 

조선 성리학의 역사를 대변하는 세 인물의 상반된 삶과 결말을 다룬다.

 

조광조 (오름을 너무 빨리 휘두른 개혁가): 주자의 책을 읽으며 "노력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에 가슴 떨려 했던 청년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얻어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가짜 공신의 훈장을 박탈하라는 '위훈삭제' 등 급진적인 정치 개혁은 기득권의 반발을 샀고, 결국 4년 만에 사약을 받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절명했다.

 

이황 (오름을 우물처럼 들여다본 학자): 조광조의 비극과 연이은 사화를 목격한 이황은 조정의 권력을 멀리하고 안동으로 내려가 학문에만 정진했다. 장관급 벼슬을 이른 번 넘게 사퇴하면서도, 자신보다 26살이나 어린 신참 학자 기대승과 8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단칠정론'을 완성했다. 이는 신분과 나이를 초월해 이치를 좇은 조선 성리학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꼽힌다.

 

송시열 (오름을 칼로 휘두른 영수): 17세기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주자의 해석만이 유일한 진리"라 믿으며, 주자의 책에 다른 해석을 붙인 동료 학자 윤휴를 '사문난적(유학을 어지럽힌 도적)'으로 몰아 사약 앞에 무릎 꿇렸다. 그러나 사상이 학문이 아닌 '권력 진영'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송시열 또한 정권이 바뀌자(환국) 정확히 9년 뒤 자신이 만든 똑같은 칼에 베여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

 

■ 100만 명 굶어 죽을 때, '옷 입는 기간'으로 싸운 조정

 

 사대부들의 이념 논쟁이 가져온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효종 임금이 승하한 후 조정은 대비가 상복을 1년 입을지, 3년 입을지를 두고 무려 15년간 두 차례나 온 나라를 갈라 싸웠다(예송논쟁).

 

더욱 분통터지는 사실은 이 논쟁이 한창이던 1670년~1671년 사이, 조선 역사상 최악의 기근인 '경신대기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 당시 인구의 10%에 달하는 100만 명에 가까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전염병으로 쓰러지며 "어머니가 죽은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참혹한 기록이 실록에 실릴 정도였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두뇌들은 농업 기술이나 전염병 방책을 연구하는 대신, 방 안에서 '상복 입는 기간'과 '글자 한 자의 해석'을 두고 진영 싸움을 벌였다.

 

■ 실패로 끝난 실학, 책장에 묻힌 구원의 설계도

 

송시열이 세상을 떠나고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진짜 삶에 쓸모 있는 학문을 하자"는 '실학(실사구시)'이 고개를 들었다 . 토지 제도를 개혁하려 한 유형원, 노비제 폐지를 외친 이익, 그리고 박지원, 박제가를 거쳐 500여 권의 책을 쓰며 조선의 총체적 개혁안을 완성한 정약용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혁신적인 설계도는 조선의 주류 성리학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박지원의 책은 금서가 되었고, 정약용의 유배지 저술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국가 정책에 단 한 줄도 반영되지 못한 채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써야 했다.

 

■ 400년 전의 거울,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거꾸로한국사'는 "학문과 사상 자체에는 죄가 없다"며,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이를 권력으로 만들고 '내 진영이 아니면 도적'으로 몰아세웠던 태도가 비극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름을 칼로 만들어 상대를 찌르는 이 모습이 과연 수백 년 전 조선만의 이야기인지, 지금의 우리 주변에도 존재하는 풍경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GK뉴스온 박주은기자(begi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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