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장동원 [수필가, 제20대 수도전기공고 교장]
시니어들은 만나면 종종 ‘건강’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한참을 이어가다 보면 ‘죽음’ 이야기도 오간다. 세상만사 살고 죽는 것이 제일 중하다는 데 달리 토를 달기는 어렵다. ‘어떻게 살 것인가?’로 시작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주제가 슬슬 넘어간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크게 깨우침을 받은 적이 있다. 벌써 몇 년 전, 몸담았던 기업의 임원 모임에서 한 분이 들려준 소중한 이야기 덕분이다. 80대 후반의 친척 어른이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다는 애잔한 사연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친척분은 자식들을 반듯하게 잘 키웠다. 함께 사는 딸이 늘 정갈하게 식사를 챙겨드렸는데 야속하게도 그 딸이 악성종양으로 고생 끝에 세상을 등졌다. 자식을 먼저 보낸 비통함이 어떠했을까? 그런데 어찌나 화목한 집안이었던지, 장례 다음 날부터 손녀가 밥상을 차렸다. (여기까지 듣고 참으로 복 받은 노인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후 손녀딸 손을 부여잡고 참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상을 차리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손녀는 정성껏 매끼를 준비했지만, 이후로 식탁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곡기를 딱! 끊은 것이다. 그리하여 2주째에 운명했다는 것이다.
애절하고 숙연해졌다. 아, ‘그 옛날 어르신들이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다’가 바로 이거로다! 어찌 보면 참으로 현명한 조상님들이었구나, 크게 공감하면서 결정했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떠나자!” 이 좋은 방법을 남들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섣불리 말하기도 그렇고, “나의 ‘비밀 병기’로 간직해야지” 생각했다.
필자의 장인어른도 작년에 구십을 앞두고 이승을 떠났다. 평소 아무리 불편해도 병원을 거부해 자식들 애를 몹시 태웠다. 작고하기 두 달 전부터는 음식 대신 평소 즐기는 막걸리와 소주만 입에 댔다. 아예 동네 단골 슈퍼에 대놓고 매상을 올렸다. 어느 날, 생전 처음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기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요양병원으로 모셨는데 기력이 다해 열흘 만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인어른은 어쩌면 위대한 분이다.” 문상 온 고교 친구가 과장 섞어 위로해 준 말이 귓전에 맴돈다.
그런데,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곡기를 끊는다’와 관련된 많은 내용이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 시절과 달리 기력이 쇠한 노인은, 곡기를 끊어도 실제로는 별 고통 없다는 해설도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됐다.
양가 어른 모시기에 고생해 온 아내는, 평소 브랜드나 치장에 별 관심이 없고 검소한 편이다. 그런데, 나중에 딱 한 번 큰돈 좀 쓰겠다고 외치는 게 있다. 늙어서 때가 되면 스위스에 가서 존엄사를 시켜달라는 것! 어이가 없어서,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줄 겸 ‘곡기 끊기’에 대한 남편의 결심을 슬쩍 흘렸는데 아직 반응이 없다.
‘곡기 끊기’ 또는 ‘단식 존엄사’라는 주제로 국내외에 책도 여러 권 나와 있다. 유튜브에는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것도 있고, 자기 주변의 경험을 담은 영상도 있다.
댓글이 더 대단하다. ‘단식 7 일차 편안히 가신 우리 아버지, 존경해요.’ ‘덕분에 죽는 걱정을 덜게 됐습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살 때는 죽으려 하지 말고, 죽을 때는 살려고 하지 마라.’ ‘남편과 늘 이야기합니다. 치매 안 걸려야 단식 존엄사 할 수 있다고...’ ‘저도 단식 준비 중인 81세 할머니인데요. 마음 든든해요.’ ‘종종 짧은 금식해 보면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죽음도 이렇게 맞으면 되겠군요.’
이런 내용도 있다. ‘1인 가구인데요. 단식 후 보름 만에 죽는다고 보고, 그 사이에 연락 안 된다고 지인이 찾아오거나 신고 못 하게 계획을 잘 짜야 할 것 같아요.’
영상마다 다양한 의견이 이어진다. 치매에 걸리면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치매 초기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면 그때 바로 곡기를 끊어야 한다.’는 대단한 분도 있었다. 비밀 병기로 간직하려 했던 ‘곡기 끊기’였는데, 온 세상이 다 알고 준비하니 머쓱하기만 하다.
한평생 땀 흘리고 무거운 짐 진 분들의 평화로운 안식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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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재)역사인물화문화재단 감사 ▲(주)일진파워 고문 ▲제20대 수도전기공고 교장 ▲한전 홍보실장 ▲한전 도쿄지사장 ▲「매경춘추」 「한경에세이」 「전기신문」 필진 ▲bbb코리아 통역봉사자 ▲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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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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