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    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GK기획]"참혹한 참수 시신에 나무 머리를 깎아 붙이다"… 400년 한·중 우호의 숨은 영웅, 무신 선의문 장군

  • 선우진 기자
  • 입력 2026.08.11 10:01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 임진왜란 무과 장원 급제자, 이순신 휘하에서 백의종군급 헌신 • 노량해전서 전사한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 시신에 ‘목각 두상’ 만들어 안치… 외교 대참사 막아 • 선조의 ‘각별논상’부터 시진핑 주석의 칭송, 후손들의 참배까지… 대를 이은 충절의 가문

Gemini_Generated_Image_7fo9i17fo9i17fo9.png

 

 [GK뉴스온 = 선우진 기자] 동아시아의 운명을 가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한·중 양국의 혈맹과 우호 협력을 말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숨은 영웅이 있다. 무과 장원 급제 출신의 장수이자, 외교적 위기 속에서 지극한 정성과 기지로 조선의 국격을 지켜낸 선의문(宣義問, 1548~1610) 장군이다.

 

 

 

◆ 패전의 시련 딛고 의병 부장·이순신 휘하 수군으로 재기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의 9세손으로 태어난 선의문 장군은 1585년(선조 18) 식년시 무과에서 장원(수석)으로 급제하며 호국 무관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공주판관으로서 추풍령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왜군의 압도적 화력에 밀려 대패하였고, 그 여파로 파직이라는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을 잃은 신분(조전장)으로도 상주 지역 전투에 자발적으로 참전하여 왜군을 격퇴했으며, 1593년 진주성 혈전 이후 최경장 장군에 의해 '호남의병군 부장'으로 임명되어 호국의 대의를 이어갔다.

 

이후 1596년 낙안군수로 제수되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군비 관리 부실로 탄핵을 받기도 했으나, 낙안 둔전에서 거둔 군량을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끊임없이 수송하며 충무공의 수군 재건에 결정적인 밑거름을 제공했다. 정유재란 때에는 진도군수로 부임하여 명량해전 전후 수군 재건 전략을 논의했고, 1598년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는 총탄에 맞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끝까지 지휘선을 지키는 투혼을 발휘했다.

 

 

◆ 노량해전의 참극, 외교 위기 극복한 ‘나무 머리(以木作頭)’의 정성

 

선의문 장군의 외교적 충절이 빛을 발한 순간은 1598년 11월 임진왜란의 마지막 결전인 노량해전 직후였다. 조·명 연합수군의 명나라 최고 장수 중 한 명이었던 부총병 등자룡(鄧子龍) 장군이 전사하였는데, 퇴각하던 왜군이 그의 머리(수급)를 베어 달아나는 참극이 벌어졌다.

 

■ 『수교등록(受敎謄錄)』 속 등자룡 시신 수습 기록

 

 

"副總入棺時臣目擊 則以木作頭 畫像入棺為白有"

(등자룡 부총 장군을 입관할 때 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해 보니, 머리가 유실된 참혹한 시신을 위해 나무로 정교하게 두상을 깎아 만들고, 생전의 모습을 정성껏 그린 그림을 붙여 입관하였습니다.)

 

 

당시 고금도 통제영으로 이송된 등자룡의 시신을 두고, 조선 관청의 행정 지연으로 상례 물품이 준비되지 않자 등자룡의 명나라 가신 60여 명이 격분하여 일촉즉발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었다. 이에 방량차사원이자 진도군수였던 선의문 장군은 즉시 사태를 수습했다.

 

장군은 머리가 없는 참혹한 시신을 위해 직접 정교하게 나무로 두상(머리)을 깎아 붙이고(以木作頭), 생전 얼굴을 그린 초상화를 함께 입관(畫像入棺)시켰다. 또한 풍성한 제물을 올리며 극진히 애도했다. 이에 분노하던 명나라 가정들은 선의문 장군의 눈물겨운 정성에 깊이 감복하여 조선 측에 거듭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 선조의 ‘각별논상’과 영조대의 병조참판 추증

 

접반사의 장계를 받은 선조 국왕은 "국가의 위신(事體)을 대단히 빛낸 일"이라며 이조에 명해 후대의 귀감이 되도록 '각별논상(각별한 포상)'을 하교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인 1604년에도 전라도 해안에 침범한 왜구를 야인 신분으로 직접 격퇴하여 당상관(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사후 영조 1년(1725년) 호남 유림들의 상소로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 대를 이은 충절… 장남 선약해, 청나라 심양에서 굽히지 않은 국격

 

선의문 장군의 숭고한 충의와 외교적 기상은 장남 선약해(宣若海, 1579~1643) 장군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1630년(인조 8) 후금(청나라)의 압박이 극에 달했을 때, 비변사 낭청이었던 선약해는 후금의 수도 심양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홍타이지의 강압적인 무력 시위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 국왕의 국서를 당당히 전달했으며, 당대의 사행 일기인 『입사심양일기(入使瀋陽日記)』를 남겨 명·청 교체기 동아시아 정세와 피랍 백성들의 참상을 기록했다. 돌아온 그에게 인조는 금편과 초구, 옥배를 하사했고, 비변사 동료들과의 축하 연회를 담은 <비변사문무낭관계회도> 는 오늘날 국보급 문화재로 전해진다.

 

 

◆ 400년 후 부활한 한·중 우호의 상징

 

선의문 장군의 공적은 2014년 7월 방한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중 우호의 역사적 상징으로 등자룡 장군을 언급하며 다시금 세계의 조명을 받았다. 2015년에는 등자룡 장군의 직계 후손들이 한국을 방문해 선의문 장군의 참배지와 고금도 일대를 찾았으며, 400여 년 전 조상의 참수를 애도하고 정성껏 장례를 치러준 선의문 장군 가문에 대를 이은 깊은 감사를 표했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GK뉴스온신문 비전 선언문
  • AI 시대의 단상(斷想) — “AI는 도구가 아니라 문명이다”
  • “배움이 곧 성장이다” — GK Open School 브랜드 공식 론칭
  • 아일릿 ‘Almond Chocolate’, 日서 또 역주행 인기 돌풍!
  • 글로벌 아티스트로 거듭난 방탄소년단 ‘IDOL’, 증명 스포티파이 5억 스트리밍 돌파!
  • 엑소 카이, 네 번째 미니앨범 ‘Wait On Me’ 4월 21일 발매
  •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미대사관 화상회의
  • 삼성전자 TV, HDR10+ 적용된 넷플릭스 콘텐츠 시청 경험 선사
  • 누적 출하량 2천만대 돌파! 전 세계를 사로잡은 LG 올레드 TV의 인기 비결은?
  • 서울시, K스포츠 견인할 브레이킹(비보잉)팀 창단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참혹한 참수 시신에 나무 머리를 깎아 붙이다"… 400년 한·중 우호의 숨은 영웅, 무신 선의문 장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