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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천근만근

  • 안정선 기자
  • 입력 2026.02.26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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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처럼 신호등 바뀌면

섰다가 제각기 길 건넌다

언제나 그리 살아갈 줄 믿었다

한걸음 이리 무겁고, 떨리기 전에는

 

 

_안정선

 

 

<시평>


사진은 계단 위에 멈춘 발을 클로즈업합니다. 

검은 운동화와 주황빛 양말, 그리고 차가운 회색의 석재 계단이 대비를 이루며 ‘멈춤’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고정합니다. 

발은 이미 딛고 있지만, 완전히 옮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중간 지점의 정지감이 시의 정서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공식처럼 신호등 바뀌면 / 섰다가 제각기 길 건넌다”는 구절은 


삶을 규칙과 질서,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인식해온 태도를 드러냅니다. 

신호등이라는 사회적 장치는 집단적 리듬과 안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그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별다른 의심 없이 내일을 건넙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리 살아갈 줄 믿었다”에서 


미묘한 균열이 시작됩니다. 

‘믿었다’라는 과거형은 이미 그 믿음이 흔들렸음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행 

“한걸음 이리 무겁고, 떨리기 전에는”은 


그 균열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그동안 자동처럼 옮겨지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무게를 갖고, 심리적 진동을 동반합니다. 

천근만근은 단순한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선택의 부담, 나이듦, 혹은 삶의 전환점에서 오는 존재론적 무게로 읽힙니다.

 

사진 속 계단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은유입니다.

계단을 오르는 행위는 상승이지만, 동시에 발을 들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을 요구합니다. 

시는 바로 그 찰나—발이 공중에 머물며 떨리는 시간—을 포착합니다. 

디카시의 미덕인 순간성과 사유의 응축이 잘 살아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강점은 과장하지 않는 절제입니다. 

거창한 사건 없이도, ‘한걸음’이라는 최소 단위의 움직임을 통해 삶 전체의 무게를 환기합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거운 한걸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총평하자면, 

이 작품은 일상의 규칙성에서 존재의 떨림으로 이행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디카시입니다. 

멈춰 선 발 하나로 삶의 무게를 말하는, 단정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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